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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웅진닷컴)
다자이 오사무 지음 / 허호 옮김


대학에 입학하여 작문 시간에 가장 처음 낸 독서 감상문은 '인간실격'에 관한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라 불리우는 전후 세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일본문학에 흥미가 동했던 나는 서점에 찾아가 '표지가 심플하고 이쁘며 제목이 자극적인' 일본문학 서적 한 권을 집어 들었고 그것이 바로 인간실격이었다. 

쇼와 시대의 전후 문학 작가. 당시 일본 문학계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미시마 유키오로 대표되는 '유미·탐미주의' 파와 다자이 오사무 등으로 대표되는 '데카당스'파, 즉 퇴폐문학파로 갈리어있었다. 탐미주의와 퇴폐주의, 언뜻 보기에 형질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노선은 사실은 정 반대되는 길을 가는 두 분류였다. 탐미주의가 종전 후의 패배의식을 미에 대한 접근과 집착으로 '승화'시키는 쪽이었다면, 데카당스는 이 패배의식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전형적인 패배주의 문학이었다.

그러한 데카당스 문학 중에서도 다자이 오사무의 이 인간실격과 사양은 단연 독보적인 것이었다. 구원조차 없는 파멸.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악하는 주인공, 하지만 점점 더 깊숙히 빠지게 되는 퇴폐와 관능의 늪. 물론 '사양'에서 여주인공 가즈코는 종장에 '전투 개시'를 외치며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하지만 지옥에서 외치는 구원은 그저 단말마의 비명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양은 달리보면 오히려 인간실격보다 더욱 눅눅하고 짙은 좌절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갓 대학 새내기가 된 20살의 동생들에게는 이 작품을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한창 청춘의 환상에 젖어있을 친구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불유쾌하고 퇴폐적이고, 좌절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부품으로서의 자신에서 이면의 자신을 찾고 싶을 때, 그리고 어두운 자아에 대한 보살핌을 결심했을 때는, 과감히 이 책을 추천하도록 하겠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따로 써놓은 감상문이 있으므로 이 쯤에서 끝내고, 아래에는 내가 대학 새내기 때 썼던 감상문을 적어놓도록 하겠다.



서평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퇴폐의 끝에 도착하는 인간 파멸의 종착역­


 「인간실격」은 1948년 발표된 그의 소설집 『인간실격』에 포함 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나온 직후 그는 강가에 투신자살하여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인간실격』은 사실상 그의 유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인간실격』에 실려 있는 「인간실격」과 「사양」 중 「인간실격」만 다루도록 하겠다.


 「인간실격」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로, 그가 1936년부터 구상을 시작하여 10여년에 걸쳐 집필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품었던 작품이다. 이러한 1)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닌, 작가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2)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퇴폐한 생활과 허무주의, 그리고 파멸의 미학을 테마로 한 작품을 주로 집필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는 크게 1기, 2기, 3기로 나뉘는데, 결혼 생활을 하여 비교적 안정을 되찾았던 2기를 제외하고는 허무주의와 퇴폐의식이 짙게 깔린 소설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그는 실제로 데카당 생활로 인생의 전반을 보내왔다. 과도한 음주, 흡연, 마약­ 게다가 3번에 걸친 자살 미수는 그가 얼마나 퇴폐적인 삶을 살아왔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삶이 기반이 된 그의 작품은 자연히 다른 허무주의나 퇴폐주의 계열에 비해 더욱 짙은 농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허무주의를 넘어선 패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이 점은 3)미시마 유키오를 위시한 많은 작가들의 비판․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그의 작품 세계와 더불어 암울했던 삶의 말기에 쓰인 「인간실격」은 그의 데카당스 성향이 정점에 오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인간실격은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으로 시작된다. ‘나’는 작가 자신의 사진이 동봉된 ‘누군가’의 수기를 보게 된다. 그 수기는 다름 아닌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일생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반영한 ‘요조’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수기는 그의 일생과 마찬가지로 1기, 2기, 3기로 나뉜다. 유년시절부터 소년시절까지를 다룬 1기에서 그는 타인과 같이 감정의 교류를 하지 못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찬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가진 그 절대적인 ‘힘’이 두려워 매일을 초조하게 살고, 아버지가 출장을 가게 되어 선물을 사온다고 하자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사달라고 부탁한다. 실제로도 다자이 오사무는 아버지와 가문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며 반생을 살아왔고, 유달리 자신에게 냉담한 어머니 때문에 ‘가정의 사랑’이란 것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타인에게 복종하며, 아버지의 권위에 짓눌린 ‘요조’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유년을 적나라하게 투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그가 타인에게 자신의 비정상적 면모를 숨기기 위해 발견한 것이 바로 ‘익살’이었다. 그는 익살로서 타인을 즐겁게 하고, 삶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그러나 그것은 평생 그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필요악이 되어 따라붙는다.


 익살이 자신의 연약한 내면을 보호해주는 최상의 도구임을 깨달은 ‘요조’는 두 번째 수기에서 자신감에 충만한 미남자로 등장한다. 1기의 연약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익살로서 웃긴다. 자신이 가진 이 익살이라는 무기가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은닉해줄 수 있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것으로서 속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동급생인 다케카즈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금 지독한 공포에 잠식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는 별 볼 일 없고 몸도 쇠약한 다케카즈가, 자신의 익살을 완전히 간파한 채 내면을 투시한 것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그는 그만큼의 공포에 휩싸여 떨게 된다. 자신이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간 모든 사람이 익살이라는 철옹성을 뚫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번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닌, 인간세계와 세상 사람들 모두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다. 담배를 살 때도, 지하철을 탈 때에도 지독한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점점 퇴폐하고 음탕한 생활에 빠져든다. 다니던 학교는 재적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방탕한 생활로 인해 돈은 바닥을 드러낸다. 결국 이러한 삶에 지친 그는 그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자신과 동류(同流)라 생각하는 족속인 매춘부(혹은 매춘부와 같은 호스티스)와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자살시도는 여자만 죽고 ‘요조’ 자신은 살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요조’의 자살시도를 알게 된 가문은 ‘요조’를 파문시킨다. 그는 모든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이고 허무함과 자기 멸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요조’는 ‘요시코’라는 처녀를 만나게 된다. 속세에 떼묻지 않은 순결한 영혼. ‘요조’는 그녀를 자신에게 내려온 구원이라 판단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비극이 닥쳐온다. 생활고에 시달린 그녀가 남자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벌고, ‘요조’는 그 장면을 정면으로 포착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내려진 구원마저 자신을 파괴하는 공포라고 인지한 요조는 다시 퇴락한다. 마약과 술의 연속. 그는 결국 결핵마저 얻게 되고 모든 것을 비관하여 다시금 자살을 시도한다. 이 역시도 실패로 돌아가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한 채 시골로 내려가 요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금년에 스물일곱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마흔 이상으로 본다. 이것이 제 3기이자 수기의 마지막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수기를 모두 읽은 ‘나’는 ‘요조’를 광인(狂人)이라 평한다. 수기를 자신에게 건네준 술집 마담에게, ‘나’는 ‘요조’가 살아있다면 그를 당장 뇌병원으로 보내라고 말한다. 그러자 마담은 말한다.


제가 알고 있는 요조는, 정말로 착하고, 경우가 바르고,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니 마셨다 하더라도, 하느님같이 착한 사람이었어요.


 본 작품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작가 본인의 삶이 적나라하게, 그리고 파격적으로 쓰여 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괴적이고 연약한 어투는 작품의 색과 더없이 잘 어울려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수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은 독백체로 진행되는데, 이것은 내부적으로는 주인공 자신의 생각과 상황을 더욱 흡입력 있게 묘사하고, 작품 외적으로는 작가 스스로의 죄책감을 반감시켜주는 효과를 주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보여주는데 도움을 준다. 소설과 다자이 오사무를 놓고 보았을 때, 사실 작품에서 다자이 오사무로 표현되는 인물은 ‘요조’이지만 액자식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나’를 다자이 오사무 본인으로, ‘요조’를 허구의 인물로 투사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백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다자이는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작품 내적으로 ‘독백’의 문체가 큰 힘을 갖게 되고 작품 외적으로는 '수기‘의 형식이 작품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연약한 인간의 몰락­ 그 표면적 상황이 아니다. 자신을 파괴하고 망가뜨려감으로서 억압된 세상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요조’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그러한 이유는 첫째, 작품이 쓰인 시대적 상황에 근거해서이다. 「인간실격」이 출판되었을 당시, 일본은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며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있던 시기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이 소설은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것이다. 극도의 퇴폐와 자기 파괴를 보여줌으로서 현실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를 잊게 하는 「인간실격」의 힘.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작품은 많은 일본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그가 대중을 사로잡았던 자기 파괴의 미학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의 삶과 관련해서이다. 이것은 굉장히 특이한 삶의 자세로 보이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사실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내면의 연약한 속살이 드러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혹은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며 살아간다. 요조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러한 두려움에서부터 삶을 시작했고, 결국 거짓 익살과 자기 파괴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그가 도착한 종착역은 고통에 얼룩진 폐인의 삶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전하는 교훈이다. 사실 우리 모두 ‘요조’와 같은 삶을 무의식적으로 지향한다. 우리의 감추고 싶은 내면이 드러났을 때, 웃음과 거짓으로 애써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쉽사리 드러낸 자신을 멸시하며 그것을 무마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런 거짓으로 얼룩진 다자이의 삶의 끝은 자살이었다는 것을.


-참고자료

허호 번역, 『인간실격』(웅진닷컴)

Naver 백과사전

 

1) ⓛ 수기에 가까운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 ② 작가 필생의 역작이라는 점
2)  퇴폐주의. 문학에서는 원래 로마제국 말기의 병적인 문예의 특징을 가리켰으나, 19세기 말에 보들레르와 베를렌의 영향을 받은 모리스 드 블래시, 로랑다이아드, 로당바크, J.모레아스 등 상징파 시인들이 데카당(퇴폐파:1886∼89)이라고 자칭하여, 이후 그들의 예술적 경향을 데카당스라고 평하였다.
3)  일본의 극우주의, 과격행동파 작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했다. 여성적이고 패배주의적 어조를 가진 다자이 오사무를 강하게 비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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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10/26 01:36 # 삭제 답글

    아따 그렇당께

    아직도 100년 전 소설을 읽고 있당께
  • AVHan 2011/10/26 09:48 #

    먼 개소리야 미친년아
  • Creator 2012/03/15 02:01 # 답글

    요즘 잘지내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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